'김승연 리더십'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9/10/14 leadership 김승연 회장의 미래경영 어록정리
  2. 2009/10/10 leadership 한화 김승연 회장, 57주년 기념사에서 공격경영 선언
  3. 2009/09/26 leadership 2007년 김승연 회장 신년사
  4. 2009/09/26 leadership 2008년 김승연 회장 신년사
  5. 2009/09/26 leadership 2009년 김승연 회장 신년사
  6. 2009/09/26 leadership 김승연 회장의 성장과정과 리더십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레이트 챌린지 2011’ 비전 달성을 위해 미래경영에 대한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사업 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내부 개혁과 치밀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글로벌 마인드를 공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매년 신년사와 경영전략회의 등을 통해 ‘철새론’을 비롯해 스피드경영, 비극태래론 등을 얘기한다. 김 회장의 미래경영 어록 속에 글로벌 한화의 청사진과 세계적인 기업의 경영전략 흐름이 담겨 있다.


철새론
 “글로벌 시대에는 ‘둥지만 지키는 텃새보다는 먹이를 찾아 대륙을 횡단하는 철새의 생존본능’을 배워야 한다.” (2006년 10월9일 김승연 회장 창립기념사)
한화그룹 전체가 백년대계를 새로이 수립한다는 각오로 해외에서도 통하는 ‘글로벌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비극태래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여명이 동터 오듯이 이제 우리 한화는 새로운 희망을 여는 대한민국과 함께 ‘비극태래(否極泰來)’의 미래로 나아갈 것입니다.” (2008년 신년사)
국내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로 뻗는 한화를 만들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김 회장은 “뼈를 깎는 각성 없이 이대로 5년, 10년을 보낸다면 우리의 위상은 20대 그룹, 30대 그룹으로 급속히 추락하고 말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함께 전하면서 전사적 내부 개혁을 동시에 주문했다.


보수 혁파론
 “시대에 역행하는 익숙했던 과거와의 단절이야말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첩경이 될 것입니다.” (2007년 창립기념사)
한화는 보수적이기 때문에, 한화는 소비재가 없기 때문에, 한화는 해외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라는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과거의 족쇄부터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는 김 회장의 자성론이 깊이 배어 있는 내용이다.
김 회장은 임직원들이 주인의식과 강한 승부사 기질을 갖출 것을 주문했다.


세계 일류 인재론
 “세계 속의 한화를 이끌기 위해선 국적, 학력, 나이와 같은 불필요한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2007년 신년사)
한화의 순혈주의를 탈피해 해외 영입 인재들과의 화학적 융합을 이루는 개방적인 마인드가 절실하다는 김회장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김 회장은 ▲변화의 물결에 신속히 적응할 수 있는 판단과 기민성이 있는 사람 ▲항상 자기개발을 하면서 머리를 쓰고 조직적으로 일을 해나가는 사람 ▲늘 앞을 내다볼 줄 알고 또한 일의 속도를 중히 여기는 사람을 ‘글로벌 한화’의 핵심인재로 규정했다.


프런티어정신론
 “동란의 초토 위에 사업보국의 일념으로 기적의 역사를 창조했던 화약인들의 ‘프런티어’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한화인 모두 견지해야 할 일류정신의 표상입니다.” (2006년 신년사)
높은 목표를 잡아 달성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처음부터 너무 낮은 목표를 잡아 만족하는 것을 오히려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고 김 회장은 따끔한 충고를 던졌다.
그룹 성장을 위해서는 해외에서의 기업 인수도 가능하다는 획기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스피드경영론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잡아먹는 시대입니다.” (2005년 창립기념사)
책상에서 탁상공론만을 논하다가 어렵게 찾아온 시장 선점의 기회를 놓친다면 디지털 경영환경에서의 승리는 요원하다는 위기감을 반영한 내용이다.
내부에 팽배해 있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쇄신하지 못하면 소비자가 요구하는 바를 읽지 못하고 신시장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2009/10/14 16:59 2009/10/14 16:59
한화 김승연 회장이 2009년 10월 9일 창립 57주년을 맞아 기념사에서 ‘공격경영'을 선언했다.

한화그룹 회장인  김승연 회장은 이날 창립 기념사에서 “지금까지가 위기극복과 생존을 위한 ‘수비형 경영’이었다면, 앞으로는 글로벌 비젼을 펼칠 수 있도록 사업기회를 선점해 나갈 것”이라며 공격형 경영으로의 전환을 밝혔다.

김 회장은 또 “쉼 없는 쟁기질이 봄을 재촉한다”며 “희망의 쟁기질을 멈춘다면 훗날 승자의 만찬에 초대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속적인 경영혁신도 주문했다.


김 회장은 기념사에서 인천화약공장 옛 부지에 한화기념관을 건립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8일 오후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부인인 고 이정화 여사의 빈소를 조문하는 자리에서 기자들이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의향을 묻자 “검토조차 안해봤다”며, 그간 시중에 거론되었던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설(說)을 부인했다.

한화는 최근 한화리조트와 한화개발, 한화63시티 등 레저3사를 통합했으며 한화손해보험과 제일화재의 합병을 추진하는 등 사업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9/10/10 17:23 2009/10/10 17:23

올해는 한화에 있어 중차대한 대변혁의 시기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돼 온 그룹의 새로운 CI가 마침내 첫 선을 보였습니다. 이번 CI 변경을 통해 한화인들의 의식 수준을 철저히 업그레이드시키고,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서 브랜드 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여가는 전환기로 삼아야 합니다.

작년에는 외형상 1조원 이상의 흑자를 달성하는 경영실적을 이뤘으나 아직은 외부 경영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을 고도의 경쟁력을 갖추고, 지속성장을 이뤄 나가기 위해 박차를 가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 당장 눈앞의 열매 하나를 취하기보다는, 훗날 수십, 수 백배의 풍요를 기약하며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핵심 인재확보와 육성도 하이브리드 경영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세계 속의 한화를 이끌기 위해선 국적, 학력, 나이와 같은 불필요한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다원성의 문화가 우리의 경쟁력과 체질을 개선하고 강력한 시너지를 일궈 나가도록 만들 것입니다.

올 한해는 그룹 CI 교체와 더불어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해인 만큼 일상적인 변화와 혁신에서 벗어나 과거의 불합리한 모든 것들을 일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나 자신부터 그리고 내 주변부터 조금씩 바뀌어 나갈 때, 우리 한화의 `신 르네상스 시대' 또한 반드시 도래할 것입니다.

2009/09/26 07:44 2009/09/26 07:44
"올해로 그룹의 CI가 바뀐 지 2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회사간판을 새로 달고 광고만 많이 한다고 해서 기업이미지가 초일류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그룹차원에서 한화가치를 교육하고 전파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 중입니다만, 앞으로 신뢰, 존경, 혁신의 경영이념이 각 사 기업활동에 깊숙이 뿌리내려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제조, 금융, 서비스 등 업종에 상관없이 그리고 국내, 국외사업장을 불문하고, 한화인이라면 누구나 그룹 브랜드가치를 높이고 기업이미지를 개선하는 활동에 동참해 주길 바랍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시련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높은 곳을 향하려면 발 아래 낮은 곳부터 섬겨야 하고, 천년 앞을 기약하려면 오늘 내 자신부터 다스려야 한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지난 과거는 겸허한 마음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 묻어 두고자 합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여명이 동터오듯이, 이제 우리 한화는 새로운 희망을 여는 대한민국과 함께 '비극태래'의 미래로 나아갈 것입니다.

여러분 또한 지난 시련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글로벌 한화를 향한 대변혁에 매진해 주길 바랍니다."
2009/09/26 07:41 2009/09/26 07:41

비장의 각오로 난관 극복할때


2008년은 그야말로 숨가쁘게 지나간 격동의 한 해였습니다. 엄청난 위기와 변화의 소용돌이 앞에서도 미래를 향한 도전은 계속되었으며, 도약과 전진의 열망은 뜨거웠습니다. 모두가 체감하는 바와 같이, 올해는 유례없는 세계경제의 침체로 가장 고통스러운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는 그룹의 실적 또한 이러한 우려를 심각하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확산되면서, 거의 모든 업종의 기업들이 필사적인 생존경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는 그 동안 숱한 우여곡절 끝에 대우조선해양 인수협상자로 선정되었으나, 이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수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에 맞서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은 사상 초유의 경제한파를 이겨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이며, 장차 그룹의 앞날과 번영의 기틀을 다져 나갈 기회이기도 합니다.

끊임없는 시장의 부침 속에서도, 미래를 준비하는 도전과 응전은 기업의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다. 머지않아 눈 앞의 파도는 잠들고 어둠은 걷힐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현실의 고통을 이겨나갑시다. 앞으로 우리는 크게 생각해야 크게 이룬다는 `대사대성'(大思大成)의 각오로, 글로벌 한화의 새 미래를 개척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2009년은 모든 면에서, 지난 56년의 한화를 뛰어 넘는 `자기희생과 극기'의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경쟁자들이 체감하는 위기보다 두 배 이상의 긴장감을 가져야 합니다. 경쟁자들보다 두 배 이상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비장의 각오로 지금의 난관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될 Great Challenge 2011은 이러한 비상시국에 맞서 전사적으로 생존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며 견조한 수익력을 이어가자는 비상경영 운동입니다. 각자의 정신무장을 더욱 강화하고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늦어도 3년 후인 2011년에는 글로벌 한화를 정착시키자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각 사는 사업부별로 극한의 원가절감과 생산공정의 합리화, 수익구조의 극대화를 철저히 구현해 주십시오. 선택과 집중전략에 따라 사업구조를 혁신하고 기존 주력사업의 고도화에 전력해 주십시오. 또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대비해 만반의 시나리오 계획을 준비해 주십시오. 전 임직원들은 강도 높은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가운데, 피나는 생존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그룹은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내일을 도모하며, 더 큰 성공의 기회를 모색할 것입니다. 한화의 100년 청사진을 준비한다는 각오로, 더 강한 기업, 더 빠른 기업, 더 큰 기업을 향해 끊임없이 변모해 나갈 것입니다.

2009/09/26 07:29 2009/09/26 07:29

1.성장과정
김승연은 1952년 김종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경기고등학교 2학년 재학 도중 미국으로 유학하여 캘리포니아 MELO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시카고 DE PAUL대학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귀국했다. 귀국 후인 1977년 11월 그는 태평양건설(주) 이사로서 그룹에 입사한 후, 동사의 해외담당 사장겸 그룹 관리본부장으로 재직 중에 김종희가 타계함에 따라 1981년 8월 1일 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2. 김승연 회장으로의 승계
김종희로부터 김승연으로의 승계는 장자로의 승계로서 가장 일반적인 승계라 할 수 있다. 승계 당시, 김승연은 29세라는 젊은 나이이어서 주위에서는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으나, 김승연은 성공적으로 승계를 완수하고 그룹을 계속 10대 그룹의 하나로서 발전시켰다.

승계 과정에서 재벌이 분리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한화의 경우도 빙그레와 제일화재해상이 한화그룹에서 실질적으로 분리됐다. 이러한 사건은 우리나라 재벌의 경우, 승계시에 재벌이 분열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례라 할 수 있다. 단, 한화 그룹의 경우 분리의 정도가 소규모로 끝나 그룹의 위치나 성장에 준 영향은 크지 않았다.
 
한화가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김종희가 생전에 이미 김승연에 대한 후계자로서의 이른바 경영수업을 이미 시행하고 있었다는 것. 분쟁이 이미 김승연 체제가 확고히 된 후에 일어났다는 점, 그리고 김종희의 기업관, 즉 "국가에 기여한다는 정신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김종희는 기업의 사물화를 경계하여 그룹이 가족 간에 분열되는 것에 반대하고 그룹 전체로서 승계되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3. 김승연 회장의 리더십
김승연으로의 승계가 일단 순조롭게 이루어졌으나, 이것으로서 김승연 체제가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은 아니었다. 김승연의 리더십은 한양화학의 인수와 경인에너지의 내국화를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확실한 것으로 됐다고 생각한다. 이 두 기업은 전술한 바와 같이 80년대에 한화그룹의 주력기업으로서 성장한다.

한양화학의 인수는 김승연의 결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인수 당시인 1980년의 한양화학과 다우케미컬의 적자는 각각 80억 원, 430억 원에 이르고 있었다. 또한, 주위에서도 인수 불가의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다우케미컬이 철수하려고 하는 것은 세계적 불황으로 경기전망이 없기 때문이며, 일본의 석유화학만 해도 이미 사양길에 들어서고 있다는 등의 비관적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김승연은 다우케미컬이 한국에서 철수하려는 것은 본사의 재무구조를 견실하게 하려는 해외자산 처분계획의 일환이며, 장기경영전략보다는 단기경영실적에 급급한 미국의 전형적인 전문경영인들이 다우케미컬의 적자경영이 계속될 것을 겁낸 소치로서 석유화학의 장래성은 결코 어둡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2개월 동안 실무진을 이끌고 검토를 거듭한 결과, 인수의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결정에 따라줄 것을 임원진에게 당부했다.

한양화학은 침체되었던 석유화학경기가 되살아나면서 인수 후 1년 만에 흑자경영으로 돌아섬으로써, 한양화학의 인수는 김승연 체제 출범 후의 최대의 성공작이 됐다. 한양화학의 인수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김승연의 결단력과 치밀한 조사, 분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김승연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수를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오너 경영자로서 그룹의 경영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승연은 오너 경영자로서 자신의 결단을 확고하게 추진함으로써 그룹 전체의 역량을 인수에 집중시킬 수 있었다.

다우케미컬과 한화가 가계약을 체결한 후에 본 계약을 서두르지 않자, 다우케미컬의 극동담당 사장이 가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때에는 국제법상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협박에 가까운 편지를 보낸데 대해, 김승연이 가로 30센티미터, 길이 2미터에 달하는 한지에 먹글씨로 반박문을 보냈다는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이다. 이러한 대응은 김승연의 개인적 개성의 발로일 수도 있으나, 한양화학의 인수에 대한 오너 경영자의 확고한 의지를 그룹에 보여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한화가 김종희 회장시부터 일관되게 석유화학산업에의 진출을 탐색하고 있었고, 따라서 석유화학부문에 대해 치밀한 분석을 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 있었다는 점도 김승연의 결단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요인이었다. 그러한 정보의 수집과 분석능력 위에서 다우케미컬의 경영전략을 파악할 수 있었고, 석유화학부문의 경기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보면, 한양화학의 인수는 오너경영자의 리더십과 그룹의 정보능력이 결합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경인에너지의 내국화도 한화그룹이 발전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된 사건이지만, 이 내국화 과정에서도 김승연의 리더십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니온 오일은 석유 쇼크 이후 원유공급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정유시설의 증설에 소극적 자세로 일관하는 등 경영에 관심을 가지 않고 과실송금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경인에너지의 경영권은 1989년까지 유니온 오일이 행사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한화로서는 경인에너지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태였으며, 인사권조차 유니온 오일측의 사전 동의 없이는 행사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한화로서는 정유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경인에너지의 경영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김승연은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유니온 수석 부사장을 무시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김승연의 이러한 전술은 계약 위반이었으나, 김승연은 '이 따위 을사보호조약같은 계약서가 무슨 소용 있어'라고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즉, 김승연은 이른바 우격다짐으로 경인에너지에 대한 유니온 오일의 경영권행사를 사실상 저지시킴으로써, 유니온 오일을 경영권 양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결국, 김승연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3차의 협상 끝에 한화의 최종안대로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경인에너지의 내국화 과정에서도 김승연의 과감한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양화학과 경인에너지를 성공적으로 인수한 후, 김승연은 그 동안의 중화학과 기계와 같은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에서 나아가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힘쓰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1983년에는 광고대행사인 삼희기획(현 한컴)을 설립하고 1985년에 프로야구 제7구단인 빙그레 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를 창단한데 이어 정아그룹(현 한화국토개발)과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을 인수하고, 1989년에는 서울역에 민자역사를 출범시킴으로써 유통, 레저업계의 신지평을 열었다. 1990년에는 사단법인인 경향신문을 주식회사로 전환해 인수하고 1992년에는 동양정보통신(현 (주)한화 정보통신부문)을 인수하여 통신부문에까지 진출했다.

이와 같은 80년대의 김승연회장 하의 적극적인 사업의 다각화는 과거의 김종희 회장시의 다각화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종희가 화약, 화학, 기계 등 이른바 기간산업부문을 그룹의 주력으로 하고 그 외의 분야에의 진출에도 국가 봉사라는 관념이 작용하고 있었는데 반해, 김승연의 경우 합리적인 경영전략 위에서의 다각화, 기업 자산의 포트폴리오 개념 위에서의 사업의 다각화라고 할 수 있다. 유통, 레저업에의 진출은 그 전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김종희 회장 시기와는 전혀 다른 개념에서의 다각화였다.
이와 같은 다각화의 차이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대한 당연한 대응이나, 김승연 회장의 성장 및 교육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조기에 미국에 유학하여 선진화된 교육을 받은 김승연 회장이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게 보다 합리적인 경영전략을 수립, 실행하기 쉬웠을 것이라는 것은 용이하게 추측할 수 있다.


2009/09/26 07:12 2009/09/26 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