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이야기/국내 CEO'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0/26 leadership 이건희-그의 시선은 어디쯤 향하고 있는가
  2. 2009/10/16 leadership 디자인 경영의 승부사-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3. 2009/10/13 leadership 샐러리맨의 우상-STX그룹 강덕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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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지도자 50]에 32위로 뽑힌 우리나라 기업인이 있다.
바로 前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 이다

이건희 회장은 1942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李秉喆)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거쳐 1965년 3월 일본 와세다대학교[早稻田大學校] 상과대학을 졸업후 1966년 9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MBA과정을 수료한 뒤, 1966년 9월 귀국해 삼성그룹 경영 일선에 참여했다.

그후 1966년 10월 동양방송에 입사한 뒤, 1968년 주식회사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1978년 삼성물산주식회사 부회장, 1980년 중앙일보 이사를 거쳐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이 되면서 이듬해에 제2창업을 선언하고, 인간중심·기술중시·자율경영·사회공헌을 경영의 축으로 삼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의 도약을 그룹의 21세기 비전으로 정하였다. 1993년 6월부터의 적극적인 혁신을 시작하여, 모든 직원에게 ‘가족만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라’고 요구할 정도로 경영혁신을 추진해 나갔다.
사실 1993년까지 삼성그룹은 세계시장에서 한국의 재벌기업 정도로만 알려진 무명의 기업이었다. 그러던것이 불과 10년도 채 지나지않아 세계 최고의 가전업체라 불리는 필립스, 노키아,모토로라, 소니를 넘어서 GE,지멘스와 함께 전기전자부문 세계빅3의 대열에 올라선 것이다.
신경영으로 유명한 이건희 회장은 특히나 인재를 중시하였다.
2004년 신경영10주년을 맞아 '제2의 신경영'을 선포하면서 ‘나라를 위한 천재 키우기’에 주력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이건희 회장은 집무실보다는 한남동의 승지원에서 주로 일한다. 생각을 많이 하기로 유명한 그는 야행성 체질이어서 낯보다는 밤에 생각한다. 사업에 착수하기 전에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나올 때까지 조사에 조사를 거듭한다. 그리고 그 사업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자신에게 '왜?'냐고 최소한 여섯 번 이상 묻는다. 그리고 다시 10번을 생각한다.
말도 느리며 걸음걸이도 느리고 표정에 변화가 없다. 은둔적이고 과묵하며 사색적이다.
그의 경영은 선택,마이크로 경영,좁쌀경영이다.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올려놓은 이건희 회장은 1981년 2월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1982년 1월 한국청소년연맹 이사, 1987년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1993년 3월 KOC(Korea Olympic Committee:대한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 1996년 7월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 같은해 9월 대한레슬링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1998년 4월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 같은해 8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1999년 4월 전경련 금융제도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1984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1986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 1991년 IOC 올림픽훈장, 1993년 문화부장관 감사패, 한국경영학회 제정 경영자대상, 1994년 한국무역학회 무역인대상, 1996년 한국능률협회 선정 ‘최고의 경영자상’, 200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을 받았다. 1999년 매일경제신문사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선정한 ‘21세기를 빛낸 기업인 2위’에 뽑혔다. 주요저서에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 등이 있다.

"위기는 내가 제일이라고 생각할 때 찾아온다. 발전이 없는 현재는 자만심에 찬 퇴보이기 때문이다"라며 10년 후 사업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건희 회장.
최고의 기업을 이끌어가는 총수의 마인드를 가슴저끝 느끼고 싶은 오늘이다.

2009/10/26 18:44 2009/10/2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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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경영의 승부사-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정몽규 회장이 이끄는 현대산업개발은 1976년 설립돼 올해로 32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현대산업개발의 발전을 이끌어 온 정몽규 회장.
그의 최적화된 디자인 경영속으로 들어가본다.

정세영 명예회장의 아들인 정몽규 회장은 1962년 태어났다. 정몽규 회장은 용산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학과와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 정치학과를 나왔다.

정몽규 회장은 1988년부터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1996년부터는 회장으로써 현대자동차를 이끌며 국내제일의 자동차 기업으로써의 위상을 더욱 굳건히 했다. 정몽규 회장은 1999년 4월 현대산업개발 회장으로 취임함 이후에는 건설기업인 현대산업개발의 체질을 개선하고 현금흐름과 수익성,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하는 경영을 통해 재무적으로도 가장 안정적인 실적을 자랑하는 우량기업으로 발전시켜 왔다. 정몽규 회장은 IMF의 유동성 위기도 과감한 결단을 통해 넘은 바 있으며, 오히려 이 시기에 새로운 CI와 아이파크 브랜드를 런칭하였다. 최근 정몽규 회장은 2010년까지 국내최고의 종합건설ㆍ부동산 개발회사로 발돋움한다는 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대산업개발은 자체사업이 비중이 높았던 만큼, 역시 정몽규 회장의 현대산업개발은 디벨로퍼를 지향하고 있다.

또한, 정몽규 회장은 국내 대표, 최고가의 아파트인 삼성동 아이파크를 개발하는 등 안정적이면서도 혁신적인 경영스타일로 현대산업개발의 가치를 높여왔으며 최근에는 2010년까지 국내최고의 종합건설ㆍ부동산 개발회사로 발돋움한다는 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몽규 회장은 이미 지난 70년대 아무도 주거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압구정동을 투자가치 0순위의 현대아파트 단지로 변모시키는 등 우리나라의 주택산업을 이끌어왔다고 할 수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30여년 동안 33만 호의 아파트 건설로 국내 최고의 주택건립 실적을 기록하며 자연 친화적 설계, 우수한 시공력, 끊임없는 기술개발, 철저한 품질관리, 신속한 사후관리 등을 바탕으로 정몽규 회장의 강력한 추진력에 따라 보다 안락하고 쾌적한 주거 공간을 창조한 결과, 정몽규 회장의 경영이념이 잘 투영된 삼성동 아이파크 등 현대산업개발이 지은 아파트는 ‘대한민국 대표 아파트’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최근에도 삼성동 아이파크의 73평은 지난해 57억이란 평당 7,800만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거래돼 최고 거래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정몽규 회장의 경영이념은  ‘풍요로운 미래를 지향하며 고객가치의 극대화를 창조하는 혁신적인 기업’ 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산업개발은 정몽규 회장의 지휘 아래 과거 주택전문 건설기업에서 현재는 주택건설을 선도하는 것은 물론, 건축, 토목, SOC에 이르기까지 건설의 모든 영역에서 활발히 사업을 영위하는 종합건설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은 발전은 실로 눈부시다. 대표적인 브랜드 아이파크 아파트 외에도 국내 최대의 오피스 빌딩인 강남파이낸스센터, 대전 월드컵경기장, 초특급 호텔인 파크하얏트 서울, 국내 최대의 복합 문화공간인 용산민자역사, 삼성동 아이파크타워 등을 건설하며 기능과 건축미학을 동시에 만족시켜 왔으며, 토목부문에서도 신 대구-부산 고속도로, 서울-춘천 고속도로 등 SOC민자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SOC 민자사업에서 정몽규 회장의 현대산업개발은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통해 신수익 모델을 구축하고, 국내 민간투자사업의 방향을 제시하며 시장흐름을 선도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현재 정몽규 회장은 선친인 고 정세영 명예회장의 유지를 포니정재단을 통해 발전시키고 있다. 정세영 명예회장의 애칭인 포니정(PONY鄭)에서 이름을 따온 포니정재단은 정몽규 회장이 이사를 맡고 있으며 매년 포니정장학생을 선발해 국내외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학비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포니정혁신상을 재정 및 시행함으로써 혁신적인 업적을 남긴 개인이나 단체를 독려하고 이를 널리 알리고 있다. 포니정혁신상의 제1회 시상자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선정된 바 있으며, 지난 5월에는 제2회 시상자로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이 선정돼 상패와 상금을 수여받기도 했다. 아울러 정몽규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의 사옥인 아이파크타워 1층에 2008년 5월 포니정홀을 개관하기도 했다. 포니정홀 내에는 국내 최초의 자동차인 포니(PONY)를 개발하는 과정을 표현한 초대형 아트웍과 포니정재단, 포니정 혁신상 등 추모사업을 설명하는 전시물이 함께 마련되어 있으며, 최신식 음향 및 영상시설을 갖춘 다목적 복합문화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세계적 건축디자이너가 설계한 '수원아이파크시티', 별내 신도시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별내아이파크' 등이 최근 분양대박을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정몽규회장의 디자인경영의 또 다른 결과물이 기다려 진다.

2009/10/16 12:25 2009/10/16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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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덕수 회장 그는 누구인가?

샐러리맨에게 있어 최대 꿈은 무엇일까?
만약 자신과 같은 말단 사원이 최고의 자리인 CEO에 오른다면 그들은 꿈과 비전을 제시하며
끊임없이 그 자리에 오르기위해 노력을 할 것이다.

2000년 이전에 강 회장을 잘 아는 이들은 드물다.
그저 열심히 사는 평범한 월급쟁이로만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 회장은 평범한 월급쟁이가 아니었다. 강 회장은 용기로 무장한 도전정신과 비전을 가진 야망으로 칼을 갈며 철저히 준비해온 미래의 리더였다.  

서울 동대문상고와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강 회장은 1973년 지금은 해체된 쌍용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쌍용양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당시 은행의 신용등급이 ‘트리플 A(AAA)’였던 회사는 쌍용양회와 삼성전자 두 곳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당시 미래가치가 크게 반영된 반면, 쌍용양회는 당시 현재가치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쌍용양회가 취업생들에게 더 인기를 끌었다. 강회장이 그 시절 인기좋은 쌍용양회에 입사한것은 명문대를 나오지 않고서도 충분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상고에서 닦은 주산 및 부기실력을 쌍용양회와 (주)쌍용에서 유감없이 발휘한 강 회장은 1980년대 후반쯤 대한조선공사가 매물로 나올때 조선업에 관심을 가졌었고 중공업 근무시절 조선업에 대한 확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강 회장은 1999년 말부터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 인수를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대동조선을 인수하기 위해 진해만 언덕에 5번이나 같이 갔었을 정도였다니 얼마나 열의가 대단했는지 한눈에 알 수있다. 그러니까 강 회장은 2000년 전후 조선업의 전망을 읽고 철저한 M&A를 준비했다.
국내 산업의 틀을 봤을 때 조선업의 전망이 좋다고 판단한것이 강 회장이 조선업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아닐까 싶다


 

'Speedy’, ‘Simply’, ‘Timely’

강 회장은 평소 ‘Speedy(빠르게)’, ‘Simply(간결하게)’, ‘Timely(제때)’를 입에 달고 다닌다. 임원이 우물쭈물 보고하거나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면 잠시도 참지 못하고 “그러니까 지금 어떻게 하자는 건지 얘기하라”며 다그친다. 일반적으로 그룹 오너들은 확인할 일이 있으면 비서실장을 찾는다. 강 회장은 비서를 데리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궁금한 일이 생길 때마다 담당 임원에게 직접 전화를 건다. 낮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는다. 신임 임원들은 화장실 갈 때도 휴대전화를 들고 간다. 전화 통화도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강 회장은 모든 게 속전속결이고 해답을 얻을 때까지 파고든다.

STX그룹이 숨 가쁘게 달려온 성장과정을 보면 강 회장의 속도 경영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다른 기업들이 30년, 50년 걸려 한 확장을 불과 10년도 안 돼 다 해버릴 태세로 속도를 냈다. “뒤쳐지다가는 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지론으로 2001년 인수한 STX조선해양의 경우 경영 정상화를 조기에 이루어내고 불과 2년 만에 증권거래소 상장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것이나, 17년간의 법정관리를 끝낸 STX팬오션을 국내 기업 최초로 싱가포르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것도 모두 강 회장의 속전속결의 경영 스타일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아커 야즈를 인수할 때도 강 회장은 무엇보다 속도를 최우선으로 했다.
현장에서 속도가 붙으면 의사결정과 업무 추진은 그야말로 초고속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강 회장의 지론이다.


 

인재 중시, 신입사원은 직접 면접

STX그룹의 고속성장의 비밀을 푸는 열쇠 중 하나는 바로 인재다. 강 회장은 “좋은 인재는 잘못된 전략이라도 좋은 효력을 발휘하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직원은 좋은 전략도 실패하게 한다”며 출범 초기부터 인재를 키우라고 주문해왔다. 강 회장은 바쁜 일정에도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대졸 신입사원 공채 면접에 직접 참석하고 있다. 재계 12위 그룹의 총수가 신입사원 면접을 직접 주관하는 사실만으로도 인재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강 회장은 신입사원이 자율성과 창의성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하라고 주문한다. 신입사원의 아이디어를 경영에 반영하기도 한다. 강 회장이 신입사원을 곧 기업의 경쟁력으로 보는 이유는 젊은 패기의 놀라운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임원들 사이에서는 매섭기로 소문난 강 회장의 경영 스타일도 신입사원들 앞에서만은 180%도 다르게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STX그룹이 출범 6년 만에 재계 20위권에 진입한 후 올해 12위까지 치솟으면서 강 회장은 재계의 VIP로 떠올랐다. 강 회장은 지난 2월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비상임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이어 3월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도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그만큼 재계에서 강 회장의 활동 반경도 넓어진 셈이다. 2008년 5월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를 만나기도 했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도 회동할정도로 해외에서도 강 회장은 국빈급 VIP로 대우받고 있다.


 

세계 경제의 주요 화두는 ‘에너지’

강 회장은 자원을 확보하는 자가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향후 세계 경제의 화두는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석탄광 등 자원 개발과 풍력 등 그린 비즈, 해양 및 발전 플랜트 등 에너지 분야 사업을 그룹의 차세대 성장 동력이자 미래사업의 기반으로 적극 발전시켜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꿈을 찾아 세계로’라는 그룹 모토처럼 강덕수 회장의 꿈은 어디까지 뻗어나갈 것인지 궁금해 진다.

2009/10/13 20:23 2009/10/13 20:23